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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럴 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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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럴 메이는 미국 출신의 전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1992년 메이저 리그 드래프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되며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등에서 메이저 리그 통산 3시즌을 뛰었다. 1998년 일본 프로 야구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하여 2시즌을 보냈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도 2시즌 활약했다. 2001년에는 12승을 기록하며 MVP 투표 3위에 올랐다. 이후 메이저 리그로 복귀하여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에서 뛰었으며, 2006년 은퇴 후에는 고등학교 야구 코치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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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럴 메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대럴 케빈 메이
영어 이름Darrell Kevin May
출생일1972년 6월 13일
출생지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
포지션투수
투구/타석좌투/좌타
선수 경력
메이저 리그 데뷔1995년 9월 10일
메이저 리그 마지막 경기2005년 7월 15일
일본 프로 야구 데뷔1998년 5월 24일
일본 프로 야구 마지막 경기2001년 9월 26일
소속 팀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5)
피츠버그 파이리츠 (1996)
캘리포니아/애너하임 에인절스 (1996-1997)
한신 타이거스 (1998-1999)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0-2001)
캔자스시티 로열스 (2002-2004)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5)
뉴욕 양키스 (2005)
신체 정보
188cm
몸무게77.1kg
드래프트 정보
드래프트 연도1992년
드래프트 순위46라운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메이저 리그 기록
승-패26승 43패
평균 자책점5.16
탈삼진414
일본 프로 야구 기록
승-패32승 31패
평균 자책점3.67
탈삼진540

2. 선수 경력

대럴 메이는 199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46라운드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되어 프로 야구 경력을 시작했다. 브레이브스, 파이리츠, 에인절스에서 메이저 리그 세 시즌을 보낸 후, 1998년 일본 센트럴 리그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일본에서는 한신 타이거스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각각 2시즌 씩 총 4시즌을 뛰었다. 2001년에는 12승과 2.9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MVP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1]

2001년 시즌 후 메이저 리그 복귀를 선언하고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했다. 2003년에는 10승을 거두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2004년에는 19패를 기록하며 부진했다. 이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뉴욕 양키스를 거쳐 2006년 은퇴했다.

2. 1. 메이저 리그 경력

메이는 199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46라운드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되어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브레이브스, 파이리츠, 에인절스에서 메이저 리그 세 시즌을 보낸 후, 1998년 일본 센트럴 리그한신 타이거스로 팔렸다.

일본에서 4시즌(한신 타이거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각각 2시즌)을 보낸 후, 2001년 12승, 평균자책점 2.95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MVP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1]

2002년에는 부진했지만,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재계약했고, 2003년에는 10승 8패, 평균자책점 3.77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 평균자책점, 이닝, 탈삼진, 완투, 선발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하며 팀의 에이스가 되었다.[1]

2004년에는 19패를 기록하여 팀 및 아메리칸 리그의 패배 투수가 되었다. 2005년에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로 이적했고, 같은 해 7월 2일에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다.

2006년에는 신시내티 레즈 산하 AAA급 루이빌에서 뛰었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했다.

2. 1. 1.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2-1995)

메이는 199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46라운드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되어 프로 야구 경력을 시작했다.[1] 1995년에 메이저 리그로 처음 승격되었다.[1]

연도구단등판선발완투완봉무사사구승리패전세이브홀드승률타자투구 이닝피안타피홈런사사구고의사구탈삼진폭투보크실점자책점평균자책점WHIP
1995ATL200000000--214.01000001005511.252.50


2. 1. 2. 피츠버그 파이리츠 (1996)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이적했지만, 시즌 도중에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이적했다.

2. 1. 3.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1996-1997)

메이는 199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46라운드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되었고, 1995년에 메이저 리그로 승격되었다. 1996년에는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이적했지만, 시즌 도중에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이적했다.[1]

2. 2. 일본 프로 야구 경력

메이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일본에서 4시즌을 보냈는데, 한신 타이거스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각각 2시즌을 뛰었다. 3년 연속 우승을 놓치고 좌완 선발 투수 보강을 진행하던 자이언츠는 메이에게 계약금과 연봉을 포함해 1억 5000만 엔(1.5억)이라는 조건을 제시하며 영입했다. 이는 한신 시절 연봉 4200만 엔(4200만)에서 대폭 인상된 금액이었다. 이적 당시 메이는 "노무라 감독과의 일은 이미 끝난 일. 언제까지나 앙금을 갖고 싶지 않다. 이제 마운드에서 답을 낼 뿐"이라고 코멘트했다. 마쓰이 히데키와는 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팀 동료가 되었다.

2. 2. 1. 한신 타이거스 (1998-1999)

메이는 1998년 일본 센트럴 리그한신 타이거스로 팔렸다. 한신에서는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하여 안정적인 피칭을 보여줬지만, 타선의 지원이 부족하여 2년간 단 10승에 그쳤다. 1998년 6월 6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삿포로 마루야마 구장)에서 일본 첫 승리를 거두었다.[2]

1999년 5월 29일 도쿄 돔에서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마쓰이 히데키에게 사구를 던졌는데, 마쓰이는 격분한 표정으로 배트를 내던지고 메이에게 2, 3걸음 다가가자, 구심이 말려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평소 사구를 맞아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마쓰이가 격앙되는 보기 드문 행동으로, 구장 전체가 술렁였고, 경기 후 마쓰이는 "저건 분명히 고의였음에 틀림없다"라고 코멘트했다. 그 후 마쓰이는 같은 경기에서 끝내기 3루타를 쳤다.

1999년 7월 18일 자이언츠전(고시엔)에서는 1점 뒤진 6회 초 2아웃 2루에서 다카하시 요시노부가 1루 땅볼을 쳤을 때, 베이스 커버에 나섰지만 베이스를 밟지 않아 세이프로 판정되었고, 항의하던 메이는 심판인 스기나가 마사노부의 가슴을 밀쳐 폭력 행위로 퇴장당했다. 항의하는 사이에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와 실점했고, 이 실점으로 인해 한신은 2대 3으로 졌다. 폭력 행위로 인해 2주간의 근신 처분을 받았지만, 근신 기간 중에 연인과 치아 치료를 겸한 여행을 다녀온 것이 발각되어 노무라 가쓰야 감독과 대립했다.[3] 메이는 "저 감독은 이기면 자기 공, 지면 선수 책임"이라고 노무라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코멘트를 언론에 배포하여 반론했다.[4] 이로 인해 구단으로부터 벌금 1200만 엔(1200만)과 무기한 근신 처분을 받고 귀국했다. 시즌 도중인 8월 12일에 사실상 퇴단이 결정되어 자유 계약이 되었다.

메이의 등번호는 한신 시절 69번이었다.

2. 2. 2.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0-2001)

2000년일본어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메이는 12승을 거두며 팀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이듬해인 2001년일본어에도 10승을 기록하며 2년간 22승을 올렸다.[7] 2001년에는 12승, 평균자책점 2.95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MVP 투표에서 3위에 올랐다.[1]

2000년일본어 6월 7일, 도쿄 돔에서 열린 한신과의 경기에서 전 동료였던 와다 유타카가 3회 연속 타석을 비우자 와다의 머리 부근에 투구를 하여 문제가 되었다. 퇴장 처분은 받지 않았지만, 10일간 출장 정지와 벌금 처분을 받았다. 히어로 인터뷰에서 메이는 "(타석 회피는) 두 번 정도는 참는다. 세 번이나 당했으니, 일부러 당해도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to him(그를 노렸다)"이라고 답했다. 이후 이 발언은 "투구 동작에 들어갔으므로 타자에게 던진 것뿐"(to him)이라는 발언을 기자들이 "타자를 노리고 던졌다"(at him)라고 오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6]

2001년 11월 22일, 메이는 구단에 메이저 리그 복귀 의사를 밝히고 팀을 떠났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등번호는 '''42'''번이었다.

2. 3. 메이저 리그 복귀

메이는 2001년 시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메이저 리그 복귀 의사를 밝히고,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하며 미국으로 돌아왔다.[1] 2003년에는 10승을 거두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2004년에는 19패를 기록하며 부진했다. 이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뉴욕 양키스를 거쳐 2006년 은퇴했다.

2. 3. 1. 캔자스시티 로열스 (2002-2004)

2001년 11월 22일, 메이는 구단에 메이저 리그 복귀를 요청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퇴단했다. 2001년 9월 스카우트 여행에서 메이의 활약에 감명을 받은 로열스 단장 알라드 베어드는 12월 17일에 그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1]

메이는 2002년에 부진했지만, 로열스는 그와 2003년 재계약을 맺었다. 메이는 10승 8패, 3.7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 평균자책점, 이닝, 탈삼진, 완투, 선발 경기에서 1위를 기록하며 이에 보답했다.[1] 2003년에 10승을 거두며 팀의 에이스가 되었다.

2004년에는 반대로 19패를 기록하여, 팀 및 아메리칸 리그의 패배 투수가 되었다.

2. 3. 2.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뉴욕 양키스 (2005)

메이는 2005년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했고, 같은 해 7월 2일에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다.[1]

2. 3. 3. 은퇴

메이는 2006년 신시내티 레즈 산하 AAA급 루이빌에서 뛴 것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대학 야구 코치를 맡았다.

3. 코칭 경력

대럴 메이는 현재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세인트 마이클스 가톨릭 아카데미에서 고등학교 야구 코치를 맡고 있다.[1]

4. 평가

한신을 원망하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2003년에 한신이 리그 우승을 했을 때는 데일리 스포츠에 축복의 코멘트를 보냈다. 팀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았으며, 특히 야부 게이이치와 사이가 좋다는 것을 본인이 밝혔다.

로진백을 만진 후, 손바닥에 침을 뱉는 버릇이 있었다. 상대 팀으로부터 "스핏볼(부정 투구)에 해당하며, 반칙 행위가 아니냐"라고 지적받은 적도 있어서, 종종 심판으로부터 주의를 받았지만, 메이 본인은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멈추지 않았다.

2020년 2월 13일에 노무라 가쓰야의 부고를 접하고 "노무라 씨의 가족 여러분께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라고 코멘트했다[8]

기복이 심한 성격이었다. 이 성격 탓인지, 일본 프로 야구계에서는 승리 수나 탈삼진 수를 쌓는 한편, 상대 타자에게 구종을 간파당해, 안타나 홈런을 맞는 일도 많았다. 삿포로 돔 개장 경기에서는 역사적인 제1구를 홈런으로 허용했지만, 후쿠도메 고스케는 메이의 성격상 초구는 절대로 직구를 던질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세레모니 때문에, 경기가 5분 늦게 시작)[9]

참조

[1] 웹사이트 The Greatest 100 Royals of All-Time - #82 Darrell May http://www.royalsrev[...] 2007-11-05
[2] 웹사이트 【6月6日】1998年(平10) 外野まで走ったヨッさん 試合中、お客さんに判定聞いた! https://www.sponichi[...] 2011-06-06
[3] 웹사이트 ダレル・メイ “裏切り者”“問題児”と言われ逆風の中でプレーし続けた左腕/平成助っ人賛歌【プロ野球死亡遊戯】 https://column.sp.ba[...] 2018-10-12
[4] 웹사이트 助っ人トラブル 審判にボール投げつけた投手には罰金4000万円 https://www.sponichi[...] 2016-06-28
[5] 웹사이트 1999年 ダレル・メイ、野村監督批判のビラ配り罰金のち退団 https://www.sanspo.c[...] 2020-04-20
[6] 뉴스 読売新聞2007年6月27日22面 読売新聞 2007-06-27
[7] 웹사이트 アリアス、メイ……拾ってもらった先で成績を伸ばした助っ人外国人 https://column.sp.ba[...] 2019-12-09
[8] 웹사이트 元阪神メイ氏「安らかに」現役時遺恨の野村さん悼む https://www.nikkansp[...] 2020-02-13
[9] 웹사이트 中日OB・福留孝介さん、札幌ドーム1号ホームランの”裏話”ぶっちゃける 『賞金100万円』と聞いていたのに実際は…全然違う額 https://www.chunichi[...]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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